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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아름다운 사람

1800년대 후반 미국 개척 당시 가난한 시골 동네에 의사는 한 명뿐이었다. 그는 마을의 아픈 사람들을 돌보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속이 아픈 사람, 사고로 다친 사람, 아기를 받는 일,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전염병이 창궐한 마을에도 그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임종도 그가 지켜내고 있었다. 내과,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를 막론하고 사람이 아픈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의사로, 또는 시골 사람들의 이웃이며 친구로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 자신이 오래 떠나왔던 도시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짐을 챙기려고 사무실의 캐비넷 문을 열었을 때 우르르 발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호박들을 보며 화가 난다.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진료비 대신 가져온 것들이다. 그들은 돈이 없으니 그것으로 성의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 의사는 감자, 고구마를 보지 않고 오직 환자만 보았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데 그것들은 그에게 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마워하는 성의를 무시하지 않으려 받아놓았을 것이다.   오래 일을 했으나 모은 돈도 없이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자신이 처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를 삭이며 마차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갈 무렵 저 뒤에서 한 소년이 마차를 향해 뛰어오며 의사를 부른다. 옆집 아주머니가 산통이 심하여 의사를 부르러 왔다는 소년의 말을 듣고 그는 즉시 마차를 돌려 환자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 마을의 의사로 마을 사람들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그 시대를 살았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자전적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에 나오는 시골 의사 이야기다.   20년 전부터 어린 손녀를 안고 소아과를 드나들었었던 나는, 엊그제 제 어미의 부탁으로 막냇손자 정기검진을 위해 아이를 데리고 그 소아과에 갔다. 오랜만에 본 의사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더 늙었을 텐데, 내 눈에는 새파랗게 젊었을 적의 맑게 웃던 청년 모습만 아직도 그려져 있었나 보다. 병원을 나오면서도 왠지 마음이 짠하게 울린다.   대부분의 아이는 병원 문밖에서부터 무섭다고 운다. 발버둥 치며 우는 아이를 억지로 붙잡아 겨우 진찰을 마치면 의사 선생님은 잘했다고 아이를 달랬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의 진을 빼고 키운 손녀는 벌써 대학생이 됐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늙고 있는 그 의사가 요즘 들어 부쩍 더 존경의 마음이 든다.   돈벌이가 안되는 소아과,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은혜로 여기며 욕심부리지 않고 묵묵히 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     한국은 요즘 의사 대란을 겪고 있다. 그것은 우리 부모들의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을 공부로만 내몰고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잘 살라는 이기심만을 키워준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의술이 돈벌이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 심히 안타깝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마음이 먼저임을 읽을 수 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아픈 사람을 방치하면 안 되는 것이 의사의 의무이며 인류애의 실천일 것이다.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 고치는, 늘 고맙고 존경스러운 의사들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시골 의사 의사 선생님 요즘 의사

2024-05-20

[하루를 열며] 구름이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구름이는 아들네 집 강아지다. 이제 한 살이 된 구름이는 비단 실처럼 희고 매끄러운 털을 가졌으며, 그 작은 얼굴에 서리태콩을 박아놓은 것 같은 새까만 두 눈과 까맣게 반짝이는 코를 가진 귀여운 아이다. 구름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며, 1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내 손바닥만 했다.   나는 아들네 뒤뜰에 심어놓은 채소들이 궁금해 가끔 아들 집에 온다. 구름이는 나를 무척 좋아한다. 뭐든지 깨물기를 좋아하는 구름이에게 나는 내 손가락을 깨물어도 그냥 놓아둔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말라 하지만 조곤조곤 아프지도 않게 깨무는 것을 나는 뿌리치지 않는다.     온 가족이 일터로, 학교로 다 나간 빈집에 구름이는 심심하다. 내가 가면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긴 귀털을 휘날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를 환영하는 세리머니가 너무 격하다 못해 숨이 멎을 듯 헉헉거린다. 그리고는 제 물그릇으로 달려가서는 허겁지겁 물을 핥으며 숨을 고른다. 나의 무릎에 앉아 내 손가락을 깨무는 구름이의 얼굴은 더없이 행복하고 만족한 표정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다는 눈빛이다. 그러다가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그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나도 일어서야 할 순간 때문에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침내, 아이를 밀치고 일어서는 나 자신이 표독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다. 내 뒤 꼬랑지를 붙들고 서 있을 아이를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고 나와 그대로 닫았다. 그런데 종일 내 눈앞에 구름이가 보인다. 실망스러운 슬픈 눈빛을 하고….     요즘엔 개의 위치가 많이 달라져 있다. 사람을 위로하는 반려견으로….   아이들에게 개의 존재는 더 각별하다. 뭐라 가늠할 수 없는 살붙이처럼 애정을 쏟게 하는 친구라 할 수 있다. 심신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나 외로운 노인들에게도 개는 참 좋은 가족이 된다. 개는 예쁘기도 하지만 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살갑게 구는지 스스로 대접받게 한다. 이 각박한 세상에 누가 저만큼 주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며 충성을 다 하겠는가? 개는 주인이 젊었든지 늙었든지 생김이 잘생겼든 못생겼든 상관하지 않는다.     호머의 소설 『오디세이아』에 아르고스라는 개 이야기가 나온다.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가 키우던 개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 나갔다가 고생 끝에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오디세우스가 없는 궁궐에는 아름다운 오디세우스의 아내 펠레로페에게 청혼하러 몰려든 구혼자들이 매일 살림을 축내며 흥청거리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오디세우스를 늙은 거지로 변신시켜 그들에게 복수하도록 돕는다.     오디세우스가 사랑하며 키우던 아르고스 개는 돌보는 이 없이 거리를 떠돌면서 20년 동안 매일 궁궐 문 앞에 앉아 돌아올 주인을 기다렸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거지 행색의 오디세우스를 아르고스는 바로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지만 주인을 만난 아르고스는 늙은 몸으로 너무 흥분하고 기진하여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구름이도 주인의 발걸음, 목소리, 그림자까지도 아는 것 같다. 밖이 보이지 않는 집안에서 길 건너의 그 어떤 움직임에도 호되게 반응하며 짖어대지만, 내가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일을 해도 짖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던 구름이는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른다.   구름이가 아주 어렸을 적, 밥 먹는 식탁 아래서 간절한 눈빛으로 음식을 달라는 구름이에게 슬쩍 먹던 음식을 떨어뜨려 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본 8살 손자는 사람 음식을 주면 강아지가 죽는다고 했다며 ‘She will be die’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죽어도 저렇게 눈물을 흘릴까 싶게 당황스러웠지만, 순진한 어린아이는 사랑하는 개를 잃게 되지 않을까 가슴으로 흘리는 슬픈 눈물이었던 것이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구름 구름이의 얼굴 오랫동안 오디세우스 구름이도 주인

2024-04-17

[하루를 열며] 2.7그램의 무거움

계란 한 개의 무게는 보통 사이즈가 50~60그램이라고 한다. 그중에달걀껍데기의 무게는 5~6그램이 나간다고 한다. 속에 든 흰자와 노른자를 빼내고 남은 껍데기는 손에 별 무게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부서진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가벼운 희고 매끄러운 2.7그램의작은 공이 탁구공의 무게란다.   탁구대의 상판 표면은 폭 1.525m, 길이 2.74m의 직사각형으로 바닥에서 76cm 위에 수평으로 되어 있다. 탁구대 상판엔 길이로 센터라인이 그어져 있고 가운데 15.25cm 높이의 네트가 탁구대의 반을 갈라놓고 있다. 선수들은 달걀껍데기보다 가벼운 작은 공을 이 좁은 사각 공간의 면적 안에다 공을 떨어뜨리고 받아내야 한다.   탁구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힘을 최대한으로 눌러 그 날아갈 듯 가벼운 공을 상대의 공간으로 던져놓아야 한다. 때로는 그 작은 공을 상대의 공간으로 사납게 내리쳐서 튀어 오르는 공을 상대가 받아치지 못 하는 경우가 득점으로 연결된다. 또는 상대가 보낸 튀어 오르는 공을 힘껏 내려쳐서 상대 공간 밖으로 떨어져도 아웃이 되고 점수를 잃는다. 너무 힘을 빼면 네트에 걸려 실점이 되고, 조금만 방심하여 손에 힘이 실리게 되면 여지없이 공은 탁구대 밖으로 튀게 된다. 힘을 줄 수도, 아주 안 줄 수도 없는 그 작은 무게의 공을 달래느라 선수들은 땀을 흘린다.   나는 탁구경기를 보면서 우리 인생의 삶을 보는 것 같다. 세상은 넓고 끝이 없이 커 보이지만 우리가 설 곳은 그 작은 사각형의 탁구장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힘껏 세게 쳐 내어 볼 수 있지만, 그어진 탁구코트를 벗어나게 해선 안 된다. 아무리 힘이 세어도 남을 때려서는 안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개개인의 가치와 자유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법으로, 또한 도덕으로 그어주고 있음이다.   진정 괜찮은 사람은 자신의 재물이나 외모, 학벌 같은 것이 그보다 못한 이에게 위화감이 되지 않도록 2.7그램의 공을 가슴 속에서 늘 조율하며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계란껍데기보다도 가벼운 탁구공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나무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아무도 해치지 않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룰 밖으로는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자라고 있다. 봄, 여름 따뜻함 속에 마음껏 자라나 씨를 얻은 후에는 가을이 되면 훌훌 미련 없이 화려했던 잎들을 벗어버리고 맨살로 찬 겨울 앞에 선다.   저 가벼운 공처럼 꾹꾹 눌러 자신의 잘나고 자랑하고픈 마음을 다듬어가며 너무 세게도, 너무 약하게도 아닌 세상 속에 어우러져 모두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치열하면서도 온화해야 한다, 또한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여야 한다.’ 마틴 루서 킹의 말이 생각난다.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던 선수들을 몇 점을 뒤지고 있는 상대 팀의 코치가 타임아웃으로 불러낸다. 선수들은 그 작은 공에 얼마나 휘둘렸는지 땀 닦을 수건부터 받아든다. 왜 이런 작은 공의 스포츠를 만들었을까? 그건 때때로 아무 데로나 튈지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으라는 인생의 추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마음가짐…. 쉽지 않은 세상, 내 속에 탁구공 하나 넣어 놓을까?   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는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상대 공간 탁구대 상판 탁구공 하나

2024-01-10

[하루를 열며] 민족의 노래 음악회

엊그제 6월의 따뜻한 주말, 북부 뉴저지의 한인 중·고등 학생들로 구성된 나눔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우리의 조국과 민족’이라는 주제로 음악회를 열었다. 내가 나가는 교회의 지휘자이기도 한 나눔하모니를 이끄시는 단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음악회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우리 청중들과 같이 불렀던 곡들은 우리가 학교의 기념식 때마다 늘 부르던 곡들이라 몇십년이 지났으나 그냥 술술 불렸다. 애국가부터, 삼일절 노래, 유관순 누나의 노래, 광복절 노래, 6·25 노래 등으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흙 다시 만져보자!‘로 시작되는 광복절 노래와, 6·25 전쟁의 참혹함이 노랫말에 들어 있는 ‘전우야 잘 자라’는 지금도 내 가슴 한쪽 언저리에 얹혀있다. 솔리스트들이 부른 고향 생각, 비목, 가고파 등의 가곡들도 고국의 산천을 그려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세대는 나라 잃은 아픔을 잘 알지 못하고 살다가 이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살고 있지만 ‘흙 다시 만져보자’라는 노랫말 속엔 나라를 빼앗기고 뿔뿔이 여기저기 떠돌며 내 나라를 찾아 내조국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피 같은 한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를 찾아 고국의 땅을 밟아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그 노랫말 속에 다 들어있음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저 한인 2세들도 우리의 어릴 때처럼 연주하고 있는 그 노래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하는 어른들의 설명으로 조금은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불렀던 몇십년 전의 노래가 언젠가는 가슴으로 절절히 와 닿는 날도 있으리라. 한 번, 두 번, 기회가 닿는 대로 부르고 또 부르면 그들의 머릿속에도 자동으로 입력되고 어디서부터였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한국 사람의 피가 시작된 조국, 대한민국을 알게 될 것이다.   가톨릭 교황이 여러 나라를 순방할 때,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서는 그 방문국의 땅에 입을 맞추는 것을 보았다. 상징적이지만 방문하는 나라를 축복하며 사랑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조국의 흙 속에는 우리의 DNA도 섞이어 있을 것이며, 그 땅엔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사는 둥글고 넓은 따뜻한 모성이 있어, 길은 멀어도 바다를 향하여 기어가는 거북이처럼 늘 내 조국 동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진중 가요인 ‘전우야 잘 자라’라는 이 노래도 우리 어릴 때는 씩씩하고 명쾌한 행진곡처럼 신나게 불렀으나 오늘 다시 이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나의 목으로 차오른다. 죽은 전우의 시체를 묻어주지도 못하고 급박하게 앞으로 나가야 하는 나라의 존폐를 어깨에 짊어진 그들의 아픈 심정이 만져지는 시간이었다.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4절) 터지는 포탄을 몸으로 막으며 전진해야 하는 그 젊은이들의 목숨값이 아니었다면 선진국 반열에 선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내 앞줄에 앉아 있는 연주하는 학생들의 학부모인듯한 젊은 부부를 자꾸 훔쳐보게 된다. 그 노래들을 아나, 모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 따라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아이들 또래인 그들을 보며 내 아이들도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긴 이런 노래들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을 전혀 모르는 손자들에게 이런 노래를 가르쳐 줄 기회를 어떻게 만들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음악회 민족 광복절 노래 삼일절 노래 우리 민족

2023-07-03

[하루를 열며] 중앙시론 한인사회의 회계 투명성 높이자

올해도 국제정세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다. 반상의 기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과연 곧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시각차는 팽팽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절대로 미국을 추월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 있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서 최고의 선진국이 된 사례가 없고, 중국의 사회·경제 구조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국에서도 ‘투명성’은 정치를 넘어 경제·기업·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필요충분조건이 된 지 오래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힘이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모처럼 친지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니 자연히 정치로 화제가 옮겨갔다. 어떻게 법조인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내우외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잡아야 할까?  이구동성으로 부정부패 고리를 끊고,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윤 대통령은 재임 동안 ‘법치주의’의 뿌리만 내려놓아도 성공한 정권이라는 것이 주류였다.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특히 기업과 정부, 사회단체 등 각 조직에서 회계 투명성 확보를 들었다. 선진국의 길목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주 한인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주 한인사회는 올해로 이민 120주년을 맞는다. 한인 1세대들은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이래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개척정신 하나만으로 당당히 주류사회에 도전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는 주류정치권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한인사회는 급성장했다. 그럼에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많은 한인 단체들은 아직도 구멍가게 운영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의 단체에서 회계 불투명으로 인한 부작용이 속속 노출되고 있다.   실례로 애틀랜타의 경우 지난 34대 한인회는 회계 불투명으로 임기 내내 지탄을 받았으며, 급기야 당시 회장은 전직한인회장모임에서 퇴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를 시정하고자 나선 35대 한인회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말 총회에서의 회계 감사 발표의 내용과 절차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정상 회계감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비단 여기뿐이랴. 상당수의 한인조직도 도진개진이다. 지난해 지역 한인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비영리단체 팬아시안커뮤니티센터(CPACS)의 분규사건도 주원인은 회계 불투명에서 초래됐다.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봉사단체들도 아직 회계상황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다고 한다. 지역 한인들이 이웃을 섬기라고 쌈짓돈을 내어 지원한 대가이다.   한인 사회의 중심축인 종교단체들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각종 분규사태는 알고 보면 대부분 회계의 불투명에서 시작됐다. 물론 일부에서는 회계감사를 강화하는 등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또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인 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회계 투명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 다소의 비용과 노력이 든다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계묘년 검은 토끼해를 맞아 큰 단체이든 작은 모임이든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보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하루를 열며 중앙시론 한인사회 미주 한인사회 회계 투명성 정상 회계감사

2023-01-22

[하루를 열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엔 새해 무렵이면 서로에게 주고받는 새해 인사로 카톡이 북적인다. 우편으로 신년카드를 받던, 전화로 안부를 묻던, 평소 생각하고 있던 지인이나 친척, 연로하여 걱정되던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하게 된다.     복 많이 받으라 해서 꼭 복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잘 되기를, 복 많이 받는 한 해가 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덕담하게 된다. 그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싫다 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우리 어릴 때 새해 명절은 음력 설을 쇠곤 했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의 동태를 살피며 올해는 무슨 설빔을 준비하고 계신가? 또 설날 먹을 맛 난 음식을 그려보며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설날 아침 부모님은 아침 일찍 우리를 새로 지은 설빔을 입혀서 고개 너머 마을 큰집으로 데리고 갔다. 큰집엔 이미 아버지의 여러 형제와 그들의 식구들이 다 모여서 시끌벅적하다. 아버지와 남자 어른들은 먼저 제사를 드리고, 아침을 먹은 후 할머니께 세배하고 동네를 돌며 연세 많으신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러 다니시곤 했다. 모두 흰 두루마기를 단정히 입으시고 설날 늦게까지 동네를 도시던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의 모습이 어렸을 적 보았던 내 기억에 조금 남아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들이 아름답게 여겨진다. 새해를 맞아 연세 드신 어른들을 찾아뵙고 공경하는 것은 볼품없이 늙어 아무 힘이 없으나 노인들이 살아온 그 연륜을 높이고 존경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더러 음력설까지 챙겨 쇠는 집도 있겠으나 대개 1월 1일을 명절로 지키게 된다. 국가 공휴일로 거의 모든 학교나 직장이 다 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관계로 가족과 친척들이 다 모여 새해를 맞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우리는 자녀들이 다 가까이 살기 때문에 때마다 모두 모일 수 있다. 새해엔 떡국을 끓여 먹으며 자식들에게 세배를 받는 행사를 빠지지 않고 한다. 손주 놈들은 크리스마스에 이어 설날 세뱃돈을 주 수입으로 계산해 놓고 기다린다. 올해도 온 가족이 모여 풍성한 음식으로 밥을 먹고 손주 놈들은 쭈뼛쭈뼛 세뱃돈 받을 시간을 재는 눈치다. 딸네 아이들이 먼저 세배를 했다. 그 아이들은 이제 많이들 커서 일사불란하게 세배를 마쳤다. 해마다 똑같은 할아버지의 훈계인지 덕담인지 긴 설교 뒤에 세뱃돈을 나누어준다.   이제 아들네 두 형제의 세배 차례가 되었다. “시작!” 하는 내 구령에 맞춰 절을 하는데 아직 어린 작은 놈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아 멀뚱하니 서 있다. 혼자 절을 하고 일어난 큰놈이 아우에게 “Do it!”이라며 소리친다. 모두 한바탕 웃고 나서 어른들은 작은놈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또박또박 천천히 따라 할 수 있게 가르쳐준 후 다시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물론 1.5세인 내 자식들의 세배는 이미 학습되어 이젠 자연스럽다.   내가 한국말이 쉽지 않은 손주들에게 새해마다 세배를 하게 하는 것은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머릿속에 새해엔 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하는 한국의 좋은 풍습을 가르치고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지난해에는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몸을 다독이느라 힘들었다. 올해는 검은 토끼처럼 팔짝팔짝 뛰어 높은 산도 오를 수 있는 건강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복 많이 받는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새해 새해 인사 새해 명절 설날 세뱃돈

2023-01-13

[하루를 열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엔 새해 무렵이면 서로에게 주고받는 새해 인사로 카톡이 북적인다. 우편으로 신년카드를 받던, 전화로 안부를 묻던, 평소 생각하고 있던 지인이나 친척, 연로하여 걱정되던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하게 된다.     복 많이 받으라 해서 꼭 복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잘 되기를, 복 많이 받는 한 해가 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덕담하게 된다. 그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싫다 할 사람이 없을 듯하다.   우리 어릴 때 새해 명절은 음력 설을 쇠곤 했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의 동태를 살피며 올해는 무슨 설빔을 준비하고 계신가? 또한 설날 먹을 맛 난 음식을 그려보며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설날 아침 부모님은 아침 일찍 우리를 새로 지은 설빔을 입혀서 고개 너머 마을 큰집으로 데리고 갔다. 큰집엔 이미 아버지의 여러 형제와 그들의 식구들이 다 모여서 시끌벅적하다. 아버지와 남자 어른들은 먼저 제사를 드리고, 아침을 먹은 후 할머니께 세배하고 동네를 돌며 연세 많으신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러 다니시곤 했다. 모두 흰 두루마기를 단정히 입으시고 설날 늦게까지 동네를 도시던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들의 모습이 어렸을 적 보았던 내 기억에 조금 남아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들이 아름답게 여겨진다. 새해를 맞아 연세 드신 어른들을 찾아뵙고 공경하는 것은 볼품없이 늙어 아무 힘이 없으나 노인들이 살아온 그 연륜을 높이고 존경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더러 음력설까지 챙겨 쇠는 집도 있겠으나 대개 1월 1일을 명절로 지키게 된다. 국가 공휴일로 거의 모든 학교나 직장이 다 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관계로 가족과 친척들이 다 모여 새해를 맞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우리는 자녀들이 다 가까이 살기 때문에 때마다 모두 모일 수 있다. 새해엔 떡국을 끓여 먹으며 자식들에게 세배를 받는 행사를 빠지지 않고 한다. 손주 놈들은 크리스마스에 이어 설날 세뱃돈을 주 수입으로 계산해 놓고 기다린다. 올해도 온 가족이 모여 풍성한 음식으로 밥을 먹고 손주 놈들은쭈뼛쭈뼛 세뱃돈 받을 시간을 재는 눈치다. 딸네 아이들이 먼저 세배를 했다. 그 아이들은 이제 많이들 커서 일사불란하게 세배를 마쳤다. 해마다 똑같은 할아버지의 훈계인지 덕담인지 긴 설교 뒤에 세뱃돈을 나누어준다.   이제 아들네 두 형제의 세배 차례가 되었다. “시작!” 하는 내 구령에 맞춰 절을 하는데 아직 어린 작은 놈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아 멀뚱하니 서 있다. 혼자 절을 하고 일어난 큰놈이 아우에게 “Do it!”이라며 소리친다. 모두 한바탕 웃고 나서 어른들은 작은놈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또박또박 천천히 따라 할 수 있게 가르쳐준 후 다시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았다. 물론 1.5세인 내 자식들의 세배는 이미 학습되어 이젠 자연스럽다.   내가 한국말이 쉽지 않은 손주들에게 새해마다 모두 불러 세배를 하게 하는 것은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머릿속에 새해엔 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하는 한국의 좋은 풍습을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지난해에는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몸을 다독이느라 힘들었다. 올해는 검은 토끼처럼 팔짝팔짝 뛰어 높은 산도 오를 수 있는 건강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복 많이 받는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새해 새해 인사 새해 명절 설날 세뱃돈

2023-01-12

[하루를 열며] 이렇게 좋은 날엔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들판이며 나무들이 보드라운 바람에 흔들거린다.   파아란 하늘에서는 햇볕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발밑에는 얼마든지 있는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보랏빛 제비꽃, 노란 민들레, 이름도 알 수 없는 배꽃을 닮은 흰색의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흔들리고 있다.    이런 날, 누가 슬프다더냐. 누가 얼굴에 근심을 담을 수 있다더냐. 하늘은 모두에게 공평한 은혜를 내리고 있다. 이런 날은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도 배고프지 않고, 아무도 고독하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행복한 기분 좋은 날이 될 것이다. 빈 가지에  뾰족뾰족 아기 손가락 같은 잎을 열어 성글었던 가지를 초록으로 채워가고 있는 나무들은 점점 배태(胚胎)한 여인을 닮아간다.     청둥오리 한 쌍, 잔잔한 강물 위에 부채 물살을 그리며 나간다. 비단결 같은 머리를 곱게 빗어 내린 숫오리의 머리털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담청색으로 보였다가 담녹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강가의 풀들은 더 신이 난 듯 내려 비추는 햇살을 향해 큰 웃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공원 펜스의 철망을 들락이며 놀고 있는, 참새보다도 몸집이 작은 가슴에 노오란 털을 가진 새가 얼마나 예쁜지 얼른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쪽쪽거리는 그의 지저귐 소리도 곱고 귀엽다. 어쩌면 세상은 이리도 아름다울까? 이 기묘한 자연을 어찌 다 알겠는가. 봄을 수 십번을 지나왔는데도 나는 아직 신기하고 놀라운 자연의 경이로운  섭리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아이, 젊은이, 노인들 모두 생명력 가득한 들로 나가자. 찬 겨울 어두움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나는 봄의 정기를 몸속 가득히 불어넣자. 그동안 집에 갇혀 움츠렸던 뼈마디 쭉 펴보고 휘휘 팔도 저어보자. 초록 바람 핑계 대고 뺨을 후려치고 달아나는 머리카락이 장난을 건다. 온통 새것들의 비릿한 풀향기에 취해서 저 푸른 하늘 흰 구름 한 점 걷어다 덮고 들잠을 청해볼까?     이제 응달의 선뜻함이 가신 완연한 봄이다. 아침 일찍부터 햇살이 포근하게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공원으로 달려나가려던 참인데 마침 친구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이렇게 좋은 날엔 뭘 해야 할까요, 앉아있기도, 서 있기도 아까운 날이네요.” 오늘을 그렇게 표현한 그녀는 어쩌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주 행정명령이 시행된 지얼마 되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균이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떻게 공격해올지 모르는 두려운 시간이 먼 외계의 이야기처럼 까맣게 지나갔다. 목까지 조여드는 두려움을 느끼며 숨 한 번 크게 쉴 수 없었던 이 황당한 세월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끝날 수 있을까 하던 불안을 다행히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어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고통받았는지… 주변의 많은 사람의 억울할 만큼 슬픈 이야기들에 산 자들은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하늘은 인류의 그 아픔을 위로하듯 더없이 아름다운 봄을 열어주고 있다. 여기저기 봄나물도 눈에 띈다. 통통하게 살 오른 쑥 한 줌 뜯어다가 저녁에 쑥국을 끓여볼까? 오늘은 쑥국을 먹어야 내 몸이 몽땅 봄으로 채워질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날엔 봄 이야기 왁자한 들판으로 나가보자.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공원 펜스 보랏빛 제비꽃 카톡 메시지

2022-05-16

[하루를 열며] 간극(間隙)

 학교가 파할 시간,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 가득하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나와 자기 아이를 부르는 학부모의 손짓을 따라 아이들을 내어주고 있다. 매일 인사를 주고받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오늘은 손자를 데리러 할아버지가 오신 것 같다. 집까지 걸어서 4~5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후줄근한 할아버지라도 와야 집에 보내주는 미국 초등학교.   놀이터 앞에서 아이는 놀고 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지만 할아버지는 한 마디로 ‘노’라고 자른다. 어제는 할머니가 데리러 와서 놀이터에서 잠시 놀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에겐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평생 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하신 노인은 영 융통성이 없어 아이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이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할아버지 내외는 일하는 아들 내외를 도우러 미국에 오신지 얼마 안 되었다. 집이 바로 학교 옆인데 학부모가 꼭 와야 아이가 집에 갈 수 있는…. 할아버지의 심기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의 걸음이 무겁게 칙칙 끌린다. “신발 끌지 마라!” “왜요?” “신발 닳는다!” 나도 내 손자를 데리고 뒤따르며 들은 그들의 대화에 귀가 번쩍 열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신발 닳는다’ 반갑기까지 하다. 나는 풋! 하고 터지려던 웃음을 얼른 숨겼다. 곧이어, 귓가에 내 어머니의 고함이 따라나섰다.     ‘넌 발모가지에 칼이 달렸냐? 운동화 사준지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찢어먹냐?’ 어머니의 역정이 있을 때마다 나는 진짜 내 발이 이상하게 생긴 것인지 심각하게 내 발을 살펴보곤 했다. 어제 학교 파하고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많이 하여 망가졌나보다 하는 가책도 들어 뜨끔하기도 했다.     한 시간여, 야산 길을 걸어 통학하던 초등학생 어린 내 발. 밭 사이 풀벌레들과 함께 뛰던 구부러진 산길. 띄엄띄엄 작은 마을 여럿 지나, 장마에 패인 고갯마루 올라서면 그제야 보이던 녹번 삼거리 저 아래 초등학교. 하굣길에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내 키만 하게 자라던 고추밭, 깨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길. 온갖 풀꽃들이 돋아나던 그 좁은 길이 아련히 떠오른다. 집에 오면 검정 고무신으로 갈아신는데도 내 운동화는 앞 밑창이 빨리 헐떡거리곤 했다.   나는 저 할아버지와 거의 동시대를 지나온 사람으로 충분히 할아버지가 이해된다. 그러나 그의 어린 손자는 어찌 알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지금이 아무리 풍요롭다 해도 당신의 궁핍하던 시절을 여전히 쉽게 지우지 못하는 노인의 눈에는 아까운 것을 모르는 지금의 아이들이 못마땅하리라.     남은 음식을 주저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저 할아버지 같은 마음이었다. 아까운 마음에 나도 여러 번 잔소리도 해봤지만 여기서 태어나서 미국문화 속에 자란 아이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먹는 음식 접시에 다른 이의 수저가 닿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이 이곳의 식사 예절이란다. 큰 그릇에 비빈 밥을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히며 먹던 그때가 따뜻했고 그리워지는 것은 이제 배부른 까닭일 것이다.   땅 밟을 일 거의 없고, 걸어 다닐 일 별로 없는 요즘 세상에 신발 닳을 걱정하는 할아버지…, 꼰대 같은 할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   그 멀고 긴 간극이 내 눈에는 훤히 다 보이던 날이었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간극 할아버지 내외 아래 초등학교 평생 학교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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